어렸을때 나는 평범한 새낀 아니었던거 같다.
적당한 중산층 자제로 태어나 양부모다 잘 계시고 여동생 2명, 장남으로서
의무와 처신이 올바른 새끼로 보였지만 사상이 글러먹은 새끼였다
학과 수업에 충실하여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다
요즘 공부 잘하려면 컴터 한대쯤은 있어야한다며, 아버지께서는
400만원 가량의 486PC와 그당시 160만원 가량의 휴렛펙커드 CD라이터등을
내게 선물해주셨고, 그 선물이 나에겐 독으로 돌아왔다
중2의 나이로 하이텔과 나우누리를 종횡무진 털고다니며
대량의 야동과 포르노픽, 그리고 게임(뭐 씨발 야겜 엘프아냐? ㅋㅋ)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어느샌가 이미 플레이보이 창업주 휴헤프너 부럽지않은
딸감을 쟁기게 되었다 기가는 커녕 500메가의 하드디스크는 내 컬렉션의 클라스에
맞지않아, 점점 부족한 용량을 씨디로 메꾸기 시작하였고 어느샌가 내방은
불법 영상물 제작소가 되어갔다.
사업의 시작은 위에 서술한 친구녀석 덕분이었다
내 중학시절 내내 절친이었던 이새끼는 나와 마찬가지로 욕정에 눈먼
사춘기 하이에나였고, 내 컬렉션을 오픈한 순간 천국에 눈이 멀어버린 이새끼는
더이상 친구로서의 프렌쉽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나만이 유일신이며 메시아다 하고 나를 받들여 모시기 시작했다.
나는 컴퓨터가 없는 불쌍한 어린양을위해 주에 한번씩 내 프라이빗한 공간을
양도해 주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어린양새끼가 믿음을 저버린 사건이있었으니,
이 씨발새기가 나몰래 씨디 2장을 뽀려서 옆반새끼에게 2만원에 쳐 팔아먹는
망발을 저지른것이다.
숨도안쉬고 내리 30분을 매타작을 하고, 2만원을 10만원으로 돌려받는 훈계를
하여 친구새끼를 참회시키고, 우린 사업을 구상했다
공씨디 한장에 2천원, 100장단위로 사면 100장에 10장 뻑나는 웅진 저질공씨디를
100장 패키지 13만원씩 구매를 했고, 장당 만원에 팔아먹을 연구에 돌입했다
제조와 마켓팅 그리고 상품선별 시장조사등 우리가 해야할일이 일순간
세계지도를 넘어섰고, 학과공부따윈 할시간도 없었을뿐더러 방학을 반납하는
강행군과 야근을 병행했다.
일주일동안 서양과 동양 그리고 애니로 품목을 엄선했고, 599메가를 꽉 채우는
알찬 상품을 기획했다. 각기 다른 취향의 고객층을 두루 섭렵하기 위해
100메가쯤은 포르노픽으로, 300메가는 동영상으로, 나머지는 야겜 한개씩을
포함한 완제품들이 속속들이 완성되었고
동양 1 2 3, 서양 1 2, 애니 1 2 3 총 8개 품목의 시제품을 완성할수있었다.
희한하게 지금 회상해보면 동양물이나 애니물에 모자이크 따윈 본 기억이었었으니
모두 북미 루트로 넘어온 작품들이었던걸로 유추해본다
대량의 제조를 위해, 방학시즌 종료와 함께 바로 마케팅에 들어갈수있도록
우리는 상품제조에 박차를 가했다
겨울방학이 끝나는 시점에 설날이 붙어있어, 방학 종료후 신속한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어 세뱃돈이 지천에 깔린 대목을 해먹을 목표를 잡았다
새벽마다 방문을 걸어잠그는 타이트한 야근이 시작되었고, 수백장이 되어버린
내 컬렉션은 긴 기다림끝에 상품출하를 앞두고 있었다.
개학과 동시에, 우리는 파격적인 마켓팅으로 홍보를 했고 상품은
정말 날개돋힌듯 팔려나갔다. 개학 3일만에 우리는 목표매출 100만원을 달성했고
우리 회사의 다음목표는 코스닥 상장이었다 씨발 ㅋㅋ
초반 대박을 계속 이어가진 못했지만 일평균 매출을 20만원선으로 유지하며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획상품 출시도 준비하며
사업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몰려드는 돈에 우리는 점점 나태해졌고, 날이면 날마다 커피숍과 오락실
노래방을 들락거리며 유흥에 심취해갔다. 거침이없었다 우린
전부터 맘에 두고있던 섹시한 궁뎅이를 가진 펜싱부 계집을 꼬셔서
노래방에서 아다도 떼보고, 옆에 여중계집들을 끼고 시내를 활보했으며
HOT와 젝스키스 테이프로 선물공세를 하며 새파란 계집질에 몰두하다보니
점점 우리의 사업은 내리막길로 향했다
섹스를 한번도 못해본 새끼는있어도 한번밖에 안해본새끼는 없다고 했던가
수중에 돈이 떨어져서 계집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의 금단증상은
극으로 치닫았고, 이미 한개의 보지로 만족할수없는 몸이 된우리는
다시금 휘황찬란한 영광을 쥐기 위해 사업에 몰두하기시작했다.
매출이 저조해진 이유를 분석하였다, 신상품의 부재 그리고 돌려먹기
고객새끼들이 많은 물량이 풀리자, 지들끼리 돌려보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하기시작한탓이었다. 씨발새끼들 저작권 개념이 없는것들같으니 (응?)
신상품의 기획과, 시장확장을 위해 처음으로 땡땡이도 쳐보고
우린 사업을 위해 점점 학과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근처 중학교들을 상대로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영업을 했다.
학 학교마다 학년별 3명의 공급책을 모집했다, 마진은 5:5
못생긴년들은 모조리 삭제하고 양보다 질로 승부하기 위해서
전보다 훨씬 타이트한 선별을 거쳐 베스트 작품을 출시했다
그리고 이번만은 특별히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위해 그당시에 출시한
피파 월드컵97 (정가26,500 이었던거같다)를 구매해서 대량 복제하기시작했다
역시 코피를 쏟는 강행군을 버티는 제조에 들어갔고, 끝없는 열정으로
완성된 350장의 결과물
개시 첫주만에 완판 매출 300을 달성하고, 영업이익 200의 기염을 토했다
순풍에 돛단듯 우리의 사업은 점점 확장되어가기 시작했고
이미 우리 구에서 우리를 모르는 중딩은 간첩소릴 들을 정도였다
팔린건지 뺏은건지 모르겠지만, 점점 고딩들에게도 반응이 일어났다
유명세와 더불어 병신같은새끼들이 소지품간수를 못해 부모들이나 선생들에게
걸려서 터지는 민원도 잦아졌지만 첨예한 우리 모집책과 충성심과 프렌쉽진한
친구녀석이 일선에서 다 막아주는 덕택에 사업은 순풍이었다
밀려드는 주문에 벅차질 무렵, 우리의 사업에 각을 내는 큰 기회가 다가왔으니
그것은 바로 디아블로다.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화제를 안은대다
정품가격 (35000원가량)의 압박. 우리 고객들은 당연히 출시전부터
수많은 니즈를 어필했고 우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점점 잦아드는 클레임덕에 점점 야동보다 문제없는 게임에 목말라했었다
디아블로와 피파98의 출시에 우리는 이제 완전 게임전문으로 돌아서게되었다
진짜 불티나게 팔렸다. 예약은 이미 일주일전부터 마감이었고 하루 생산량이
턱도없이 따라가질 못했다. 아에 컴퓨터도 학교근처 친구집으로 옮겨서
학업과 씨디제조를 겸업하였다.
각 교시마다 친구와 나는 분업으로 교차땡땡이를 치며 제조를 해댔고
매주 매출은 200이하로 떨어진적이없었다.
완전한 사업재기에 성공한 우리는 시설투자와 사업확장을 기획했고
중고컴퓨터 한대와 중고 외장형 씨디 라이터를 구매했다
스티브잡스는 자기집 주차장에서 창업을 했지만 우린 친구집 옥탑창고방에
우리의 공장을 건설했다
30분당 씨디 4장을 찍어내는 시설이 완성되었고 이제 남은것은
또다른 대박작품이 터지길 숨죽여 준비하는것뿐
우리의 긴 기다림을 저버리지 않는 블리자드께서 역사에 획을 그을
게임을 출시했다 이름하야 스타크래프트 .. 씨발 ㅋㅋ
출시전부터 난리가 났고 수많은 우리 고객들은 우리만 바라보고있었다
새로 준비한 공장과, 수많은 대기자들은 우리의 열정에 불을 지폈고
대망의 출시일에 우린 3일밤낮 식음을 전폐하며 제조에 몰두하였다
물론 학교도 안갔다. 친구 부모님이 올라오실까봐 옥상가는문을 잠그고
갈라파고스같이 이 이질적인공간에서 우린 열정을 불태웠다
씨발 이거 끝나면 한달 푹 쉬면서 (응? 씨발 학교는 ㅋㅋ) 한바퀴 돌고오자며
어린나이에 사춘기도 못느낄만큼 우린 우리를 불태웠다
대망의 판매개시일
아직 해도 뜨지않은 5시부터 우리는 물량을 송출하기 시작했고
각 학교에 스타크래프트 복제 씨디가 뿌려졌다 장당 12000
첫날 뿌린 씨디만 300장, 현재 재고 200장 우리의 목표는 1천장이었다
당일 수금한 금액만도 200만원 가량이었고, 다음날 승전보를 울리며
계집들을 끼고 시내 돈까스집에서 우아하게 칼질을 하고있는도중
수십통의 민원이 터졌다.
그래 개씨발 베틀넷
모두 똑같은 씨디키로 베틀넷이 될 턱이없지않나
비범한 블리자드 씨발새끼들이 베틀넷 홍보에 주력한 덕택에
시나리오 플레이를 위한 구매층따윈 전무했고, 그많은 고객층들은
베틀넷을 위한 구매를 했던것이었다. 장사속에 눈이 멀었던 우리들은
게임자체의 핵심을 간과했고, 이제 남은건 심판의 단두대뿐
각학교에서 수없이 터지는 민원을 모집책을이 케어하지 못했고
벌써 피해자가 수백명가량 되어버린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우린
찾지못했다. 성난 컨슈머들의 항의를 잠재울수있는 방법은 환불뿐
우리 사업을 이대로 완전 박살낼수없기에, 우린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전원 만원 환불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했다
소비자의 신뢰를 지키기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타짜는 버린패에 마음을 두지않는법
모든 모집책들에게 환불정책을 전달했지만, 우리의 의도대로 일이 매끄럽게
진행될턱이 없었다. 미친척 돈먹고 째버린 모집책 몇명덕분에
몇몇 부모들에게 진정이 들어갔고, 교내 선생들은 수사에 들어갔으며
담탱이의 판결은 씨발 사형.. 은 아니고 전학이었다.
아쉽게도 우리의 첫사업은 베드엔딩으로 마무리되었고
친구녀석과 나는 그후로 몇번 만났을뿐 곧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멀어져 십몇년후에 동네야산에서 재회하게되었다.
어린 치기에 돌이켜보면 우스운 일이었지만, 이 나이를 먹으면서
수많은 일을 해봤지만 그때같은 열정으로 해본적이없다
지금보면 모두 현행법 위반에 구속감인 범죄지만
어릴때 무슨 법치개념이 있었겠나
다 시간지나 술자리 안줏거리 추억이 될뿐이더라
글쓰다 종반시작부터 힘빠져서 기승전병신으로 마무리한다
열심히 살자
FIN
3줄 요약
1. 오랜만에 옛친구를 만나다
2. 우린 중딩때 창업공신
'썰 SS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UL) 경마장 다니며 만난 도박 중독자들 썰 (0) | 2016.04.15 |
---|---|
(SSUL) 리니지 정모갔던 썰 (0) | 2016.04.15 |
(SSUL) 친구여친이랑사귀다 깨진 썰 (0) | 2016.04.07 |
(SSUL) 초딩때 킹오브하다가 끌려나간 썰 (0) | 2016.04.07 |
(SSUL) 어렸을때 치킨먹던 썰 (0) | 2016.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