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SSUL2017. 4. 16. 23:02
   

게임하다가 질려서 옛날 생각하던 차에 조난당한 기억이 떠올라 썰을 풀고자 한다

 

지금 떠올려보면 존나 병신같아서 고개가 저절로 좌우로 흔들리는 이야기이다

 

우선 내가 조난당한 곶이랑 대충 비슷한 짤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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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저런 곳에서 조난을 당했었구나 생각해주면 되겠다...

 

당시 나는 존나 엉뚱하고 철딱서니 없는 초딩 같은 놈이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정신연령은 유아 수준이지만...

 

 

 

 

어쨌든 그 때 나는 얼마없는 친구들과 술약속을 잡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몸살 때문에 헤롱헤롱 하던 놈이 몸살 기운이 회복되고 있다고 산책을 하던 중이었는데

 

허약해진 몸이 채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산에 올라 산책을 하고 술약속 까지 잡음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은 18시 쯤이니까 슬슬 하산하고 버스타고 가면 되겠다 생각함과 동시에...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위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고

 

건너편에는 약속 장소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이 있을 지역이 보였다

 

존나 멍청하게도 저 바위들을 건너면 길따라 도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버스 정류장 까지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랑 GTA랑 혼동을 한건지 아니면 그냥 머가리가 빈 것인지

 

곶 첨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10분 쯤 길이 아닌 곳을 해치며 내려가다보니 땅이 깎여있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결심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몸을 엎드린 채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착지할 곳을 탐색했다

 

당장 몸을 던지면 몸이 아작이 나던가 그대로 노짱 영접할게 뻔했다

 

그러던 중 절벽 쪽에 나무 뿌리가 군데군데 튀어나온 장소를 발견했다

 

저 뿌리들을 잡고 최대한 아래 바닥과 가까워지면 뛰어내릴 수 있을까 막연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그 때 씨발 그냥 포기하ㅣ고 되돌아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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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뎁뽀 정신이 발동한 나는결국 원맨쑈를 하면서 나무 뿌리를 잡고 조금씩 내려갔고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잡고 내려가지 못할 곳 까지 왔다

 

만약 뿌리에 매달린다면 아래와의 높이를 더욱 좁힐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아래를 쳐다보니 3미터 내지 5미터 정도 되어보였다

 

뭐 어떻게든 매달리면 뛰어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나는 곧 뿌리에 매달려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발목을 마구 돌렸다

 

마음의 준비를 한 뒤 결국 뿌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높이가 꽤 됬던가보다...

 

착지할 때 온 몸의 내장이 아래로 쏠리는 느낌이 들면서 하체에 큰 충격을 받았다;;

 

바위에 앉아서 신발을 벗어 발을 주무르고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니까

 

슬슬 해도 기울어지고 있었고 친절하게 나를 이끌어주는 길 따위 없었다

 

사람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을 이 곳은 작은 야생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야생에 몸을 내던진 꼴이 됬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여기서 언제까지나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위기가 찾아오면 그것을 어떻게든 해쳐나가는 것이 생물이니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당장에 바위를 따라 쭉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운 바위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소규모 클라이밍도 하고 소규모 운지도 하고 북치고 장구치고 이동하다보니

 

바윗길이 끊어져버렸다

 

폭이 2미터 까지는 안되겠지만 우짜든가 내가 딱 뛰어넘을 수 있을까 말까한 정도의 넓이였다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으슬으슬 추워지는데 밑에 바다에 빠지면 골로가겠구나 싶었다

 

바위에 철썩철썩 부딫혀대는 바다에 떨어지면 절대 벽타고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예사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 또 그런 용기가 샘솟은 것인지...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뛰어넘을 각오를 다졌다

 

아까 운지하면서 데미지를 입은 하체를 다시금 풀어주고 목도 돌리고 어깨도 돌리고...

 

나의 결심에 못을 박기 위해서 윗도리를 속옷 빼고 전부 건너편에 잡아 던져버렸다

 

이제 이걸 넘지 않으면 얼어 뒤지는거야... 존나 혼자 각오다지는 꼴을 지금와서 상상하니 노무 웃기도 이기야;;

 

긴장이 존나 밀려올 때 마다 팔을 붕붕 저으면서 박수를 짝짝 쳐댔다......

 

나는 건너편의 착지점을 존나 꼬라봤다

 

어떻게든 뛰어넘는다 해도 착지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았다

 

게다가 바닷물에 적셔진 흔적도 보이고 미끄러질 위험도 컸다

 

착지할 때 앞쪽으로 엎어질 생각으로 머가리 속에 수십번 시뮬레이션을 했다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온 힘을 다해서 도약했다

 

내 생전 그렇게 멀리 점프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 방파제 타고 놀던 경험이 빛을 발한 것일까

 

내 신체 능력으로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간당간당한 그 거리를 넘어서 무사히 건너편에 착지했다

 

정복감이라던지 그런 여운에 잠겨있을 틈이 없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던게 벌써 가속화 되어서 주변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목적지로 도달할 수가 없었다

 

만약에 내가 그 때 모험을 떠나지 않고 안전하게 길을 돌아갔다면

 

지금쯤 버스에서 엠피쓰리로 노래 들으면서 술마시러 가고 있었겠지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니까...

 

야수의 심정으로 바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험준한 곳을 달리면 부상당할 수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리슨크를 고려해서 걸어다닐 상황이 아니라 판단했다

 

그 때 나는 마치 중세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더와도 같은 패기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달리자를 외치며 바위 언덕을 질주하다보니

 

이윽고 거대한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거대한 바위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아마 15미터 쯤 되는 높이였지 싶다

 

이걸 넘지 않는 이상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당시 그 거대한 바위를 오르는 나의 상상 속 이미지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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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그냥 병신 한마리가 필사적으로 바위에 매달려서 낑낑댔던 것에 불과함...

 

무튼 각도는 거의 직각에 가까운 바위였기 때문에 존나 힘들었다

 

바위 틈 사이에 갯강구가 튀어나와서 팔을 타고 돌진할까봐 심장이 존나 쫄깃했다

 

나는 벌레를 존나게 무서워하는데 그 때 만큼은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

 

갯강구 무섭다고 쪼글시고 자빠져있으면 조만간 힘이 풀려서 추락할 판국이었으니까

 

바위의 꼭대기는 그야말로 위 짤처럼 역경사였다

 

어릴 때 철봉에서 닭다리 하던걸 떠올리면서 이건 철봉놀이라고 계속 자기 최면을 걸었다

 

진짜 오장육부의 모든 근육을 이용해서 막보스급의 역경사 클라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절망 뿐이었다

 

높이가 50미터는 족히 되보이는 무지막지한 절벽이 나를 반겨주었던 것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 어디에도 건너갈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여태까지 헛수고를 하고 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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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냉정한 판단을 하려고 애썼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서 돌아간다고 해봐야 도중에 완전히 해가 질 것이 뻔했다

 

안그래도 바위랑 싸우느라 체력 소모가 심한데 어둠까지 가세하면 쓸데없이 체력 소모만 늘어날 뿐이었다

 

게다가 그 때 내 몸 상태는 몸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혈기를 다스려야만 했고 가만히 바위에 걸터앉았다

 

활동을 멈추고 가만히 쭈그리고 있으니까 허기가 밀려오는게 느껴졌다

 

진짜 무슨 우연의 일치일까?

 

산책하면서 벤치에서 쳐먹으려고 편의점에서 구매한 캔커피와 삼각김밥 한조각...

 

잠바 속에 쑤셔놨던 그 삼각김밥과 커피는 지금을 위해 있었던 것인가...

 

모습을 감춘 태양 대신 모습을 드러낸 달을 바라보며 끼니를 떼웠다

 

그 때 먹은거 아직도 기억난다

 

참치마요네즈맛 삼각김밥이랑 렛잇비 마일드ㅋㅋ

 

 

 

 

조촐한 식사를 마치고 앉아서 숨을 고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수면에 은은하게 비치는 월광...

 

저 멀리 아른거리는 도심의 불빛들...

 

노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문명의 고동...

 

많은 것들이 나의 조바심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나의 평화를 깨버렸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내가 환청을 들은건지는 몰라도 분명히 "아니가?"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사람 목소리가 들리니까 등골이 오싹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은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들었나 싶어서 다시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뭐가 자꾸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어둠 속에서 들리는 묘한 소리는 귀신 별로 안무서워하는 사람한테도 공포감을 안겨줬다

 

가만 들어보니 솔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한두개 떨어진게 아니라 밤새 계속 내 등 뒤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옛날에 도깨비들이 솔방울 던지면서 장난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이상한 일과 맞닥들이니까 별다른 반응을 할 수가 없더라

 

도깨비라 치더라도 도망을 칠까 뭘 할까 아무것도 할게 없었기 때문이다 ㅋㅋ

 

그저 밤이 되면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떨어지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폰은 이미 밧데리가 떨어져서 꺼져있는 상태였고

 

엠피쓰리만이 나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밤이되니 해안가는 말도 못하게 추웠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자꾸만 잠이 쏟아져 왔다

 

그렇다고 몸을 달구기 위해서 제자리뛰기를 할 만큼 에너지가 남아도는 상황도 아니었다

 

눈을 부릅뜨고 온 몸의 피가 끓는 상상을 하면서 춥지 않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댔다

 

잠을 쫒아냄과 동시에 몸을 데우기 위해 종종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온 몸의 근육에 힘을 줬다 뺐다 하면서 큰 체력 소모 없이 열을 발생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당시 나에게 있어 응원가와도 같았다

 

그렇게 기나긴 밤을 뜬 눈으로 지세웠다

 

 

 

 

 

 

좆같은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온 세상에 새벽의 빛이 서서히 퍼져왔다

 

그 희끄무레한 빛은 나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나 다름없었다

 

완전히 시야가 트일 때 까지 기다리면서 다시는 병신같은 모험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사방은 검푸른 빛에서 점점 더 파란 빛으로 변해져 왔다

 

에너지 온존은 했다는 요량이지만 밤을 꼬박 새버렸으므로 더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양 손바닥으로 내 뺨을 철썩철썩 때리고 되돌아갈 각오를 다졌다

 

우선 내가 올라왔던 이 가파른 바위부터 내려가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몸무게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쿠션 대용으로 삼으려는 심산이었지만

 

하다못해 플라시보 효과를 위해서라도 겉옷을 벗어서 아래로 던졌다

 

지친 몸으로는 내려가는게 마음먹은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 마의 역경사 구간은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게 훨씬 힘들었는데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

 

있는 힘 없는 힘 전부 끌어모아서 바위를 내려가는데

 

결국에는 근육에 힘이 고갈되서 매달려있는 꼴이 되버렸다

 

진짜 다리힘 만으로 버티고 있었다고 설명하는게 맞는 것 같다

 

이건 이제 뛰어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하고서 거리를 가늠해봤다

 

힘이 더 안들어가서 진짜 딱 버티고 있을 힘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갈등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맨 처음에 운지했던 높이랑 얼추 비슷해보였다

 

나는 발 밑의 패딩을 노려보다 결심을 하고서 손을 놓았다

 

 

 

 

정말 패딩 쿠션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뼈가 부서지는 일 없이 무사히 착지에 성공했다

 

걸을 때 조금 무릎이 욱씬거리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걸으면서 나머지 위험 요소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녹초가 된 몸으로 어떻게 그 일전의 넓은 곳을 점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지역을 통과한다 쳐도 어떻게 내가 처음 운지했던 곳을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답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 때 문득 나의 뇌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꼭 같은 길로 가야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내가 이 지경에 처한 이유가 바로 모험심 때문이었지만

 

반대로 모험심 덕에 득보는 경우도 꽤나 있지 않은가

 

나는 마지막으로 내 운에 전부 베팅하기로 하였다

 

걸어가며 찬찬히 절벽을 살펴보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없나 찾아봤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바로 한 그루의 소나무였다

 

상당한 크기의 소나무로써 옆에 절벽을 끼고 자라있었다

 

기대를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어떻게든 올라가서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의 남은 힘을 믿고 등을 절벽에 대고 다리를 나무에 딛으며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심심할 때 보던 내쇼날 지오그래픽 같은 프로그램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지형에서 비교적 안전빵으로 등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큰 힘을 내지 못하는 그 때의 상황에서 침니등반법은 엄청난 도움이 되주었다

 

나무가 없다면 오르지 못했을 절벽이었지만 그렇다고 외국 방송에 나오는 그런 지리는 높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아마 10미터 15미터 쯤 되지 않았나 싶다

 

더 이상 절벽에 등을 댈 수 없을 높이까지 올라온 나는 구태여 아래를 쳐다보지 않았다

 

응딩이 골반을 절벽에 꾹 누르고 허리를 돌려서 옆에 있는 다른 나무를 부둥켜 안았다

 

혹시 미끌어져서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애써 무시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걱정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건너편에 몸을 옮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나무를 끌어안은 팔에 몸을 끌어올릴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침착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하반신을 마저 옮길 수 있을까

 

몸을 비틀고 부들부들 힘을 주고 있는 상황에 옆구리인지 등인지 근육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내 계획대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그 때는 본능적으로 행동한 것 같다

 

상체를 땅에 밀착시키니 엉거주춤 땅에 누운 상태가 되었다

 

산도 경사가 좀 있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지 안그럼 미끄러져 떨어질게 뻔했다

 

골반이 땅에 닿아 조금씩 다리를 펴면서 점점 몸을 건너편으로 옮겼다

 

떨어져있는 솔잎 때문에 미끄러워서 큰 동작을 취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역이용을 하는게 가능했던 것 같다

 

다리로 나무 기둥을 미니까 몸이 미끄러지듯 자연스레 이동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어슴푸레한 숲 속에서 거미줄을 치고있는 거미 한마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머리에 거미줄이 뜨드득 하면서 뜯겨지는데 머리카락에 감긴 거미줄을 타고 거미가 도망치는게 느껴지니까 머리카락이 쭈뼛 섰지만

 

내가 싫어하는 곤충... 거미는 동물에다 익충인건 제외하고

 

일단 내가 싫어하는 그런 놈일지라도 숲의 생명이 나와 접촉했다는게 참으로 반가웠다

 

물론 갯강구나 바퀴벌레였다면 아마 놀라 자빠져 낭떠러지에 운지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불과 하루만에 접촉하는 숲인데 이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솔잎을 움켜쥐고 희열을 느끼는게 어디 흔한 일인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나무를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금 걸어나갔다

 

마치 디아블로에서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동굴이 밝아지는 것 처럼

 

내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 마다 숲은 점점 더 밝아져왔다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으니까 오줌 마려워서 노상방뇨 한번 싸줬다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맬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그건 정말 동물적 감각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산을 올라가다보니 이윽고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숲 속의 익숙한 경치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될지 모르겠다

 

'여기 무슨 빌라가 있고 저긴 무슨 고깃집이 있으니까 여긴 우리동네다.' 라고 말할 수 있는게 아니라

 

익숙한 나무의 형태라던지 익숙한 기운 같은게 있다... 산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다

 

이걸 이렇게 가고 이쪽으로 쭉 가면 산책로로 갈 수 있다는 본능적인 무언가가 작용했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물 만난 고기처럼 성큼성큼 숲을 나아가니 아니나다를까 산책로가 드러났다

 

산책로를 따라 털레털레 집을 향해 내려갔다

 

도중에 어떤 사람 한명이랑 마주쳐 지나가는데... 이게 또 굉장히 기분이 묘하더라이기야

 

결국 다시 문명의 땅을 밟았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편의점에 들러서 똑같은 캔커피와 삼각김밥을 사들고 집으로 귀환했다

 

냉장고에 삼각김밥과 캔커피를 쑤셔박고 방에 들어가서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거의 17시간 잤더라

 

물론 첫 끼니는 삼각김밥이랑 캔커피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진짜 씹 병신같은 경험인데 그런 병신같은 경험도 결국에는 추억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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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터는 진짜 쓸데없는 짓 안해야지 하고 결심했었는데

 

병신같은 모험 경험이 또 있다는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다

 

어쨌건 쓰다보니 많이 길어진 것 같은데 아무쪼록 심심풀이가 됬으면 좋겠노

 

 

 

 

<세줄 요약>

 

1. 거리 단축 목적으로 해안선 통과를 시도함

2. 병신같이 조난당했다가 병신같은 고난들을 겪음

3. 결국 혼자 힘으로 탈출해서 무사 귀환함


Posted by 카쿠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