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란 나는 유년시절 강아지 한마리를 키웠다.
새끼일 때 분양받은, 작은 잡견이었지만
잘생긴 견상, 쫑긋한 귀에 대단히 똑똑하고 주인을 향한 충성심이 남다른 녀석이었으며
아직까지 내 유년시절 추억 주식회사의 대주주를 담당하고 있는 녀석이다.
학교 가는길이면 항상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왔고 떠나는 버스를 끝까지 지켜보곤 했다.
방과 후 버스에서 내려 휘파람을 불면 수백미터 떨어진 집에서
미친듯이 달려와 꼬리를 치며 맞아 주었으며
옥외 재래식 화장실이었던 당시, 볼 일을 볼때면 항상 따라와 문 옆에 서있던 녀석이었다.
종종 엄마 몰래 창문을 열고 조용히 두리(개이름)를 불러 같이 잠을 자기도 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C자로 웅크린 채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아직 내 기억에 생생하다.
봄이면 산딸기, 앵두가 열리는 산에 함께 올라 따 먹기도 하고,
여름이면 같이 수영도 하고
가을엔 연을 날리기 위해 같이 뛰어 다니며
눈 쌓인 겨울, 비료포대 들고 뒷산에 올라 눈썰매를 탈 때면 혀를 날리며 따라 내려오던 녀석이었다.
나는 길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생선을 말리려 널어두면 종종 고양이가 낚아채가곤 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두리도 길고양이를 매우 싫어 하는 듯 했다.
나와 함께 동네를 누빌 때 녀석은, 고양이가 보일 때면 어김없이 짖으며 쫓았고
나 또한 길냥이가 궁지에 몰릴 때 까지 따라가 괴롭히곤 했다.
그러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 했다.
이따금 마당 구석에 있는 녀석의 집을 볼 때면
길고양이가 녀석의 밥을 먹고 있을 때가 있었다. 꽤 많았다.
그럴때마다 나는 녀석이 밖에 나가 놀고 있나보다 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그냥 자기 집안에서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문을 열고 나오면 그제서야 자기도 나와
짖으며 한참 쫓아가다가 돌아오곤 했다.
나는 그때 녀석이 참 똑똑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조금의 서운함을 느꼈다.
주인이 있을 때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고양이를 싫어하는 척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함께 5년 정도 지냈다.
중학교 2학년 때, 녀석과 헤어졌다.
상당히 오랜기간 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녀석을 전 후로 다른 세마리의 반려견도 있었지만
부모님도 다른 개는 몰라도 두리는 다시 키우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정도니까.
이후 십수년이 흐르는 동안, 이따금 앨범 속에 녀석의 사진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곤 했다.
얼마전 여행을 갔었다. 내가 묵었던 숙소에는 상주하는 미국인이 한 명 있었다.
두마리의 개도 있었는데 자투리 시간엔 그가 관리도 하는 모양이었다.
발코니에서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던 도중
숙소 앞으로 자동차가 한대 지나갔는데 그 때 한마리가 날카롭게 짖으며
자동차를 쫓아갔고 차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 우리에게 돌아 왔다.
그 순간 내가 두리가 떠올렸던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인은 그 돌아오는 개를 보며 protecting action 이라고 내게 말했다.
낯선 동물로부터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말.
'아차!'
내가 있을 때만 두리가 길고양이에게 달려 들었던건
내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고자하는 녀석의 본능이었던 것이다.
지난동안 나는 녀석의 진심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고 미안하게 만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오해를 풀 수 있어서 홀가분하기도 했다.
자리를 잡으면 반려견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했었지만
이날 이후 더 확실하게 굳힌것 같다.
그리고 반려견과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을 듯 하다.
개는 자기 자신보다 주인을 더 사랑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말을
직접 확인 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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