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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에 퍼진 루머의 진실을 알아보자 : 베토벤의 3번 교향곡 표지

카쿠츠치 2017. 3. 12. 23:13

(개인적으로 다섯 손가락안에 꼽는 베토벤 3번 교향곡 연주 중 하나ㅎㅎ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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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자 옆나라 오스트리아에선 그 누구보다 격노한 남자가 있었어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해


"그도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 위에 올라서서 독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가 야심을 품고 작곡한 악보의 표지를 거칠게 찢어 갈겼어


그가 찢은 표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음악에 조금 관심있으면 일게이들도 한번쯤 들어봤던 베토벤과 그의 위대한 3번 교향곡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야.


위의 에피소드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작곡가 그리고 당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안톤 리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리스의 베토벤 회고록에서 전해져오는 일화로 널리 알려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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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베토벤 (상) 과 페르디난드 리스 (하) 의 초상화









위의 유명한 일화는 사실일까?


뭐, 대충 제목을 본 게이들은 눈치를 챘을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일화는 사실이 아니야.


물론 베토벤이 나폴레옹 황제 즉위 이후 실망을 한것은 맞아, 그리고 격한 감정표현을 한것도 맞아. 표지를 갈기갈기 찢었다는것은 당시 프랑스를 극혐하던 영국이, 당대 유럽의 문제아, 아니 것을 넘어 거의 초인으로 신격화 되었던 베토벤을 이용한 일종의 반불 선동용으로 페르디난드의 다소 과장된 회고를 널리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음악학계에선 주를 이루고 있어.



왜냐하면 그 일화에서의 문제의 표지는 지금도 오스트리아의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걸랑.

페르디난드의 회고처럼 정말 베토벤이 표지를 찢어버렸으면 이 표지도 존재하지 않았어야 앞뒤가 맞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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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표지




오늘의 글은 베토벤 교향곡 3번의 전반적 특징을 알아보는게 아닌 이 유명한 루머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한 짧은 정보글이라 원래 여기서 줄여야 마땅해.

하지만 이왕 쓰기 시작한 김에 몇가지를 더 서술할게.


더해서 그럼 표지를 찢지않았으면 원래의 에피소드는 무엇이냐?! 하고 궁굼해하는 게이들도 있을까 해서 같이 서술하려해.





1. 베토벤과 나폴레옹의 관계


그럼 가장 궁굼한 것중 하나가, 바로 베토벤이 실제로 나폴레옹을 만났냐의 여부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야,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실제로 본적이 없어.


하지만 당시 베토벤이 머물고 있던 비엔나에 있던 프랑스 공사가 베토벤에게 영웅 나폴레옹 썰을 마구마구 풀어줘. 

더군다나 타 유럽인이 아닌 프랑스인의 시각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썰을 푸니 원조가카 찬양하는 일게이 마냥 침을 튀기며 열광적으로 찬양했겠지?


베토벤이 어릴적 독일 본에 있을때 당시 전유럽에 퍼졌던 계몽주의에 열광했던 베토벤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어떠한 영웅 혹은 개혁/혁명가는 그가 존경해 마땅한 존재 그 자체였어. 위의 프랑스 공사의 영웅 나폴레옹의 썰을 들으니 베토벤은 그 인물에게 점점 관심을 가지고, 일각에서는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단순 영웅의 삶을 살아가는 한남자에게의 관심을 넘어서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가지고 올 존경해 마땅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해.


독일인 베토벤이 자국을 침략한 나폴레옹을 빨다니 아이러니하지? 베토벤의 사상은 하나로 정리하기 너무 애매한것이 후에가면 독일적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대표 독일 민족주의 국민운동의 트렌드를 따라 가곡들을 작곡하는 행위도 보여줘. 더해서 계몽주의의 반대에 놓여있는 질풍노도 문학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던것을 보면 정말 그의 이념은 하나로 간단하게 정리하기엔 너무나도 방대하고 변증법적 성향도 없지않아 보여주는거 같아. 즉 모순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지.


아무튼 이런 나폴레옹을 향한 존경심에 그는 교향곡을 쓰기로 결심해 (물론 교향곡 앞에 나폴레옹을 깊게 의미하는 뜻을 가진 음악을 하나 작곡하는데 이건 제외할게, 하지만 이 앞에 작곡한 나폴레옹을 내포하고 있는 곡의 멜로디가 교향곡 3번 마지막 악장에서 인용되었어).


베토벤는 열정적으로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고 위에 말했듯이 교향곡의 표제를 아예 "보나파르트" 라고 정했지, 완전 노골적인 나폴레옹 찬양 음악인거야.

더해서 베토벤은 작곡 중간중간 나폴레옹한테 후에 이 곡을 헌정할때 그가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내심 걱정하는 소녀적 감성을 편지에 적나라하게 들어내기도 했어.







2. 베토벤과 나폴레옹 황제 즉위식


시간은 흐르고 흘러 1804년 어느날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이 베토벤에게 들려왔어.

베토벤은 이 소식을 듣고 상당히 실망하면서 표지에 적힌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펜으로 지워버렸어, 위의 표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얼마나 세게 긁었는지 종이에 구멍이 뚫려있느게 보일거야.


그리고 그는 교향곡의 표제를 "에로이카 (영웅)" 이라고 바꾸고 그 아래 주석을 달았어.


"한 위대한 영웅/인물 (해석이 두가지로 가능해) 을/를 기리기 위해..."


이 주석을 보면 베토벤이 나폴레옹에 대한 증오와 분노보단 한때 존경했던 사람으로서 그에게 실망감과 아쉬움을 들어내는게 눈에 딱 보이지?




이렇게 베토벤과 나폴레옹의 관계는 끝나버렸지. 곡은 나폴레옹한테 헌정 됐냐고? 아니, 이 곡은 나폴레옹한테 영영 가질 않았어. 그는 1804년 오스트리아에서 이 곡의 초연을 가졌어.


그리고 이 우여곡절 많은 교향곡 3번 에로이카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






마무리 전에 가볍에 추가정보를 적어보자면

이 교향곡 3번은 단순 베토벤과 나폴레옹의 관계뿐 아니라 베토벤의 청력문제와 내면심리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그리고 흔히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영웅시대로 들어가는 초월적인 역활을 하는 교향곡이며 더해서 18세기 교향곡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아주 혁명적이고 기념비적인 곡으로 평가받고 있어.


실제로 1악장의 형식을 나눌때 아직도 어느부분을 (기억이 깔끔하게 안난다, 아마 발전부 시작부분 이었나?) 어떻게 나눌지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고 하네.